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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버본]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본문

AKAM/커미션

[라이버본]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브루나 2016. 12. 10. 17:54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Rye X Bourbon





 은 자연스럽게 트리거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로 총구를 라이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턱 끝을 노린 총구는 아무런 떨림 없이 그 자리에 존재했다. 그저 존재했다. 안전장치가 해제된 핸드건은 손가락을 약간 당기는 것으로 총알을 내보내 이 남자의 머리를 꿰뚫을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남자는 그대로 죽겠지.

 

 스카치처럼.

 

 고요한 방 안에 원념과 일정한 후회가 얽히고 설켰다. 그 안에서 살그마니 피어나는 애정이 미칠 만큼 증오스러워서 버본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방아쇠를 당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해 놓은 모든 일들이 일순간에 무너질 일이었다. 스카치의 목숨까지 갈아 넣어 악착같이 올라온 이 자리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조직을 잡기 위해, 아주 작은 증거와 단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것을 모두 망쳐버릴 수 있는 상황의 직전을 만든 그에게 그들의 원망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아 버번은 입술에 피가 나기 직전까지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감정들이 뒤죽박죽 엉켜서 혼란스러움만 느끼게 할 뿐이었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존재가 버번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로 토오루인지, 그 두 개의 가면 뒤에 깊숙이 숨겨놓은 가장 비밀스러운 그인지 스스로가 헷갈렸다. 이 남자를 죽이고 싶은 것은 그 중 누구일까.

 

 떨리지 않던 총신이 약간의 진동을 담기 시작했다.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고 있던 표정이 입술을 시작으로 약간씩 일그러지며 혼란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것으로 변화했다. 그럴 때 쯤 떨리는 총신을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버번이 흠칫 놀라 손을 떼어내려 하자 라이는 눈을 뜨더니 총 대신 손목을 잡았다. 강한 악력에 얼굴을 찡그리며 총을 놓치자 그것을 목표했던 라이는 반대편 손으로 떨어진 총을 잡아채 안전장치를 걸었다. 잠결에 들은 소리로 설마 했지만 그 예상이 들어맞아 사일런서도 달려있지 않은 채였다. 이런 곳에서 발포한다면 몇 분도 걸리지 않아 경찰이 들이닥칠 것임이 틀림없었다.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탄창까지 뺀 라이는 총을 침대 밑으로 던졌다. 손목을 잡힌 버번은 반항할 의지를 잃고 얼굴을 묘하게 구긴 채 가만히 있었다. 모든 의지가 사라져버린 그 얼굴에 라이는 옅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안에서 스카치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는 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몰랐는데.

 

 버번의 과거를 정확히 모르는 라이에게는 그것이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보아왔던 버번이라는 인물은 감정을 잘 나타냈었지만 언제나 그 작위적인 감정 아래에 숨겨진 이성을 매우 날카롭게 벼르고 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까지 진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낸 것은 버번이라는 인물을 알고 난 이후 두 번째였다.

 

 버번이 몸을 지탱하던 다리에서 힘을 빼자 라이의 허벅지 위로 그의 무게가 내리눌러왔다. 조금 핼쑥해졌다고는 생각했지만 전과 비교했을 때 꽤 많이 차이 나는 그 무게에 라이는 침통한 기를 숨기지 않았다. 평소라면 그 기운에 악을 쓰며 달려들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조용히 얼굴만 구기고 라이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라이는 일부러 그와 눈을 맞추고 표정을 지운 채 말했다.

 

 “내가 증오스러울 것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일런서도 없이 총을 쏘면

 

 그 말에 결국 버번은 손을 뿌리치고 라이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 게 아니야. 라이의 상체가 조금 들리고, 그의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벌어졌다. 버번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에게 소리쳤다.

 

 “좋아해요!”

 “……

 “좋아해요

 

 …당신을. 그새 약해진 것인지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라이의 멱살을 잡은 손에 눈물이 뚝뚝 떨어져 흔적을 남겼다 도르르 굴러 떨어졌다. 라이는 잠시 동안 버번의 얼굴만을 바라보다 침대를 짚고 일어나 눈물 자욱이 선명한 볼을 잡았다. 눈물을 흘리느라 뜨거워진 얼굴에 조금은 차갑다고 느껴지는 손이 닿자 서로 체온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다 막아버리고 싶었다. 이 남자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이 손을 떼어 버리고 저 멀리로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혹은, 이 손에 더 의지하고 싶었다.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은 낮은 체온을 가진 이 손에 볼을 부비며 어리광 피우고 싶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고 싶었다.

 

 라이는 두 감정이 복잡하게 부딪히는 버번의 눈을 바라보았다. 잔뜩 맺혀있는 눈물이 밤하늘의 달빛을 받아 눈물의 뒤에 숨어있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빛내고 있었다. 가히 보석이라고 칭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다. 눈동자를 바라보던 라이는 기본적으로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좋아한다면, 어째서 그 마음을 숨기려고만 했던 건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던 버번이 피식 비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물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이기는 했다. 제 친우를 살해한 사람이다. 좋아하던 마음이 그대로 증오로 돌아서도 할 말이 없건만 그 마음이 남아있는 것은 고사하고 그 사람에게 그것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겠지.

 

 버번의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내가 당신과 사귀게 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요.”

 “어째서?”

 

 라이는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물었다.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도록. 고작 이런 것으로 속죄를 하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속에 쓸어 담아둔 감정을 밖으로 표현했으면 했다. 그 물음에 순간적으로 모든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다가와 진실을 말하려는 입을 꽁꽁 둘러쌌다. 버번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상대가 알고 있는 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스카치의 목숨을, 그렇게 내 버리게 해놓고 내가 당신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라이는 약간 갈라진 목소리를 듣고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하겠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말을 골랐다.

 

 “스카치가 아닌, 자네를 위해 살 수는 없는 건가?”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지금 이곳에 올라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만 무더기로 있었다. 이 조직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지금도 그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을 향한 죄책감과 조직을 향한 원망은 그가 자신을 숨기고 꽁꽁 싸매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정신을 유지해 주는 일종의 족쇄이자 원동력이었다.

 

 그 족쇄를 벗고 죄책감에서 달아난다면 과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의문에 의문을 잇는 것이었다. 확신할 수 없는 자유와 정신없이 몰두할 수 있게 만드는 증오의 사이에서 그가 고른 것은 증오였다. 만약 자유롭게 되어서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곁에는 자유로움과 함께 남은 사람이 없었고, 무리해서 자유로울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버번의 머리에 한 가닥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끌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언제나 제 길만을 지켜나갔던 이 사람이라면 나를 자유의 망망대해에서 끌어줄 수 있지 않을까. 버번은 지극히도 이기적인 생각을 머리에 품었다. 아직까지 눈물이 맺혀있는 아이스 블루의 눈동자가 물감에 먹을 풀어놓은 듯 탁한 녹빛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작은 눈맞춤에서 라이는 버번의 생각을 읽은 듯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문질렀다. 길쭉하고 적잖이 투박한 그 손가락이 매끈한 피부를 훑고 지나갔다. 손에 잡힌 통통한 볼은 마치 어린 아이의 것 마냥 부드러워서 라이는 상처가 날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그 해답을 줘도 괜찮겠나.”

 “나중에 내 원망을 들을지도 몰라요.”

 “그래.”

 “힘들 때 마다 당신 탓 할 거고,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면서 책임 다 떠넘길 거 에요. 그래도 괜찮다면,”

 

 나한테 답을 줄래요? 라이는 그토록 이기적인 물음에 웃으며 버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가볍게 새가 내려앉은 듯 한 키스였다. 그 입술은 손과는 다르게 미약한 열을 머금고 있어서 버번은 눈을 감았다. 피로가 쌓여 그런 것인지 거슬한 입술이 부드럽게 닿아 오자 눈매의 끝에 아롱하니 매달려있던 마지막 눈물이 제 일을 다 했다는 듯 떨어져 나갔다.

 

 버번은 제 볼을 잡고 있는 라이의 손을 떼어냈다. 조금 차가웠던 손이 체온을 가져가 따뜻하게 변해 있었다. 그 입술과 손과 제 몸에 닿아있는 모든 부분이 자신에게 솔직해도 된다고 위로하는 것만 같아서 버번은 입술을 떼고 푸스스 웃어버렸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흘러넘치려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내리누른 버번은 자발적으로 라이의 눈에 입을 맞췄다. 이 예민한 눈으로 나를 놓치지 않기를. 죄책감의 족쇄를 벗고 넓은 자유의 늪에서 헤맬 나를 구원해주기를.

 

 

 

 

 

* * *

 

 

 

 

 

 버번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을 떴다.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보니 저를 답답하게 끌어안고 있는 라이의 팔이 느껴졌다. 당신은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 몽롱한 기분으로 굳게 닫힌 입매에 입 맞추고 나니 창밖의 아름다운 햇살이 보여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를 그리워하듯 따라오려던 이불은 라이의 팔에 눌려 아쉽게 떨어졌다.

 

 창가에 다가가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가장 먼저 보였다. 오늘도 햇살은 맑았다. 암울하고 어두웠던 그 날과는 정반대되는 날이라 오히려 그 날이 떠올랐다. 버번은 창문에 손을 대었다. 라이의 손과는 다른 냉기가 손끝으로 들어왔다.

 

 “나를 용서해줘, ――.”

 

 그의 본명은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너에게 얽혀있는 죄책감을 없애련다. 버번은 창에 이마를 기대고 밝은 햇살이 따사롭게 비춰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조용히 라이의 품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타인의 온기가 따뜻했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이내 하나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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