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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깊고, 깊은 심해 속의 고요한 바닷물은 검은 빛만을 띤다. 탁했지만 언제나 빛나던 당신의 녹빛은 어찌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나. 탁한 검은 빛이 당신의 맑음을 가려 내 앞에서 당신이 사라진다. 후루야는 그것이 싫고, 또 싫었다. 제 앞에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존재의 불완전함이 싫어서 제 손으로 그것을 돌려놓고자 했다. 퍽, 그들이 익숙하게 듣는 타격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자신마저 심해에 들어온 것 마냥 답답한 실내였지만 그 음성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이 생겼다고 느꼈다. 심해의 압박 사이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한 번 깊은 바다를 마주했다. 딱딱한 광대뼈가 닿아온 손등의 뼈 대신 손끝이 찌르르 울려왔다. 네 존재만으로도 이리 떨리지만 그 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는 당신은 싫다..
남들에게 관심 받고 싶으면서도 관심 받는 게 무서워. 모순이지 정말. 후루야는 조소했다. 제 신분으로는 남들에게 관심을 받기는 무슨 그 관심을 떨쳐내야만 했다. 그 사실은 저를 갉아먹고 있었고, 확실히 그는 자신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 살아있는 것이 맞을까. 아무도 모르는 나인데. 과연 자신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발밑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지워지고 그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볼 옆에서 살랑이는 금색 머리카락의 감각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뿐이었다. 공안의 동료들도 서로를 인식하지 않으며 지나치는데 타인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가진 이름도 많았다. 아무로 토오루, 버본, ..
후루야는 언제까지나 그를 잊지 않고 살 마음이 없었다. 평범하게 그를 잊고, 평범하게 좋은 여자를 만나고, 평범하게 아이를 낳아 은퇴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저 암흑 너머의 눈꺼풀에 떠오르는 그의 모습이 평범함을 잡을 수 없게 만들었지만 후루야는 오로지 그것만을 원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오늘도 꿈에 나온 그의 마지막 모습에 후루야는 그러쥔 손을 눈 위에 올려두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메마른 한숨만이 입에서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 남자는 오늘도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짐 없는 모습이었다. 짙은 다크서클과 빼쭉하니 올라간 눈매, 홀쭉하게 들어간 볼 때문에 강조되는 광대뼈, 후루야가 그의 신체부위 중 가장 좋아했던 녹빛이 짙은 눈까지. 그는 이..
카페는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일부러 카페에 사람이 드문 시간을 골라 그 느긋한 시간을 즐기러 온 여성은 그 안쪽을 바라보자 잠시 놀란 듯 눈의 크기를 약간 키웠다가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의 카메라가 향한 곳에는 서로에게 기대어 잠들어 있는 두 남성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몇 달 전 여성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사람들이었는데, 겉으로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 것 같아 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했었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접었다. 그들은 겉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그 눈빛에서, 그 기운에서, 그 몸짓에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이 묻어나와 굳이 그 사이를 파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