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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아무]Prayer 본문

AKAM/단편

[아카아무]Prayer

브루나 2017. 3. 29. 18:58

 당신이 없는 이곳은 새까만 어둠의 속과 같았다.

 

 

 

Prayer

 

Akai Shuichi X Furuya Rei

 

 

 “아무로씨, 오늘은 이만 들어가셔도 될 것 같아요.”

 “, 그럼 이것만 정리하고 갈게요.”

 

 아무로는 웃으며 아즈사에게 대꾸했다. 다 씻은 그릇을 냅킨으로 닦고 차곡차곡 쌓아 정리해 선반에 넣는다. 쉽고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아무로는 그것이 아주 중요하고 힘든 작업이라도 되는 듯 하나하나 집중해서 닦아 넣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선반을 보며 잠시 뿌듯한 표정을 짓고 손을 모아 맞대어 문지르자 그의 표정이 흐려졌다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앞치마를 벗어 정리해놓고 아즈사에게 인사하자 밝은 인사가 되돌아왔다. 포아로에서 통하는 뒷문으로 나가 자신의 하얀 애마에 탑승한 아무로는 익숙하게 차를 몰아 베이커 가를 빠져나왔다. 많이 느리지도, 많이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속도로 주행하는 차의 안에서는 무표정하게 한 쪽 팔을 창가에 고정하고 턱을 괸 아무로가 반대쪽 팔로 핸들을 부드럽게 돌릴 뿐이었다.

 

 구불구불 고속도로를 통하지 않은 채 국도만으로 향하는 길은 꽤나 복잡하다면 복잡했다. 부러 길을 복잡하게 해서 가는 듯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다수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목적지를 향해 갈 뿐이었다. 핸들을 돌리는 왼쪽 손이 건조했다. 아슬아슬하게 정해진 선 안을 맴도는 것 같기도 했다.

 

 대략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적막에 휩싸인 한 성당이었다. 만월의 빛만이 성당을 비추고 있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있었을 성당. 지금에 와서는 관리하는 사람도 없어 아름다운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군데군데 깨져 있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인적 없는 이곳이 편안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누군가 말을 걸지도 않으며 언제든 원한다면 한 숨 쉬어갈 수 있는 이곳. 아무로는 벨트를 풀고 시트를 뒤로 젖혔다. 조금, 아주 조금 지친 듯 했다. 창가에 얹었던 오른팔을 들어 눈 위에 올리자 그나마 밝았던 주위가 금세 암흑으로 덮였다. 이곳에 방문하는 회수는 점점 쌓이고 쌓여 어느새 세 자리 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본래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적의 경험도 한 몫 했지만 경찰 대학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공안이라는 나라의 중요부위에 제 삶을 바친 그는 이 세상이 지극히도 부조리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오는 이유는 어째서인가. 무려 그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던 공안의 일도 뒷전으로 놓은 채 아무로 토오루의 삶을 살며 위태위태한 외줄타기를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질 얇은 피아노 줄 위에 서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피에로처럼. 꽉 쥔 오른손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무로는 점점 바닥을 치고 들어가는 기분에 팔을 치워내고 차에서 내렸다. 성당의 내부는 겉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너저분하고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는 예배당의 가장 앞쪽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제 앞에는 인자한 성모 마리아상이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용서하듯 서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처럼 오른손 끝으로 이마와 가슴, 양 어깨를 스쳐 지나와 손을 모은다. 조용한 성당 내부는 달빛으로 가득 찼다. 손은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지만 온기는 없었다.

 

 삶이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무감각했다. 나는 이제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당신이 없어진 그 날. 나의 곁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진 그 날. 그 날부터 나의 인생은 어둠으로 점철되기 시작했다.

 

 무감각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 무감각을 떨쳐내려 부러 임무를 과중하게 맡아 쓰러져보기도 하고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포아로에 나가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무감각은 심해져 이젠 자신의 존재마저 의심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을 했다.

 

 다른 사람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를 말릴 때 나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이 무력감과 무감각이 나를 전부 지배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끝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한. 내 세계의 시간은 당신이 사라진 그 날 이미 멈추었지만 나는 시간이 멈춰버린 몸뚱이를 가지고 다른 이를 살리려 노력했다.

 

 당신이 사라진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음에 기인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당신이 없음을 부인하고 도망치려 했다. 그저 앞을 향하며 자신을 갈아 거리에 즐비한 타인에게 바쳤다. 그럴 이유가 없었음을 이해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은 포기해 버릴 것을 아둥바둥 제 품으로 끌어안고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 살았었다.

 

 그때부터 얇은 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실수였으나 그 끝은 현실만이 가득했다. 그 얇은 틈만으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당신이 나의 곁에 없음에 아파할 수 있었다. 그 고통이 나에게 구원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까. 현실을 인정하고 무감각을 벗어나 고통으로 돌아오며 당신을 찾아 울부짖을 수 있다는 것이 구원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알까.

 

 희망의 한줄기 빛인 기도에 오늘도 나는 매달린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자신의 죄를 뼛속 깊이 새기며 그 이름을 부른다.

 

 “신이시여, 도와주세요.”

 

 이미 늦었단다.

 

 “그를 돌려주세요

 

 불가능한 걸 알잖니?

 

 입 밖으로 불가능한 말을 내뱉을수록 귓가에 다정한 거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목소리가 환청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나를 스스로 무너뜨리며 절망의 어둠속으로 밀어 넣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잘 알고 있는데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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