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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무트, 버번]Christian Louboutin Nail Polish - Rouge Louboutin 본문

AKAM/단편

[베르무트, 버번]Christian Louboutin Nail Polish - Rouge Louboutin

브루나 2017. 5. 26. 20:13

 베르무트는 샤워를 하고 나오니 문득 손톱이 꽤 자랐다는 것을 자각했다. 언제나 심하게 길지 않을 정도로만 다듬는 손톱이 배죽 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중이었다. 휴대폰을 들어 네일샵을 예약하려던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어플에 들어가는 대신 주소록으로 들어갔다. 받는 사람, 뭐라고 정의해야 좋을까. 머리 좋고 일 잘하는 핸드백? 핸드백 주제에 자신의 약점을 잡아놓긴 했지만 그녀가 구태여 옆에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조직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네일케어 해줘]

 

 메일을 보내고 일 분이 채 되지 않아 답장은 돌아왔다.

 

 [그런 걸로 부르지 말아달라구요! (*´*)

 지금 가겠습니다]

 

 베르무트는 피식 웃었다. 여자애 같기는. 그와는 대부분 조직의 일로 연락을 했지만 사적으로도 잠깐씩 연락을 하다 보니 문자에 하나 이상씩은 붙어오는 이모티콘들이 이제 익숙해진 참이었다. 가끔가다 보면 저보다 키가 큰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더 귀염성 있는 메일에 비식거리는 웃음도 튀어나왔다.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다보니 똑똑, 하고 정중한 노크가 들리는 순간은 빠르게 찾아왔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녀는 푹신한 슬리퍼에 발을 넣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총을 하나 허리춤에 꽂아 넣은 후 현관에 다가갔다. 느긋하게 문을 열자 언제나처럼 단정한 옷차림의 버번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서있었다.

 

 “오늘은 왜 또 심통이야?”

 “베르무트, 제 주된 일은 정보 수집이지 당신 네일케어 해주는 게 아니라구요.”

 “어머, 알고 있었으면서 받아드린 게 누군데 그래?”

 

 네네, 버번은 허리춤에 꽂아둔 총을 빼 협탁에 올려두는 베르무트를 따라 들어갔다. 그녀가 애용하는 로즈 퍼퓸의 향이 방 안에 짙게 남아있다. 그녀는 앉아있던 자리에 다시 풀썩 앉아 조용히 손만 내밀었다. 호텔 룸에는 TV 소리와 버번이 준비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자신을 가꾸는 데 까다로운 베르무트는 그에게 손톱을 맡기기 시작할 때부터 손톱깎이의 업체까지 지정해 놓았기에 그의 손에는 익숙해진 손톱깎이가 들려 있었다.

 짤깍, 짤깍 하며 길어진 손톱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내고 딱딱하게 날 선 손톱을 예쁘게 갈아내자 날카로웠던 손톱은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어서 언제나 했던 것처럼 흰 손에 흰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핸드크림을 짜서 마사지를 시작하자 베르무트는 무료하다는 듯 턱을 괴었다.

 짙은 색채를 가진 손이 새하얀 손을 바닥부터 그 끝까지 꾹꾹 누른다. 향긋한 핸드크림의 향이 장미향과 섞여서 묘한 냄새를 만들어냈다. 라벤더 향으로 고른 것이 잘못이었을까, 버번은 개의치 않고 베르무트의 손을 꾹꾹 눌렀다.

베르무트는 마사지가 끝나자 손을 코앞으로 가져와 향을 맡았다.

 

 “향이 마음에 안 들어. 나중엔 다른 걸로 사오도록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거.”

 

 버번은 베르무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끝이 날카롭고, 빼죽하고 검은 무언가가 있었다.

 

 “저걸로 저 찔러 죽이시려는 건 아니죠?”

 “, 설마. 만약 그런다고 해도 네가 순순히 죽어줄 건가?”

 “물론 그건 아니지만요.”

 

 어깨를 으쓱인 그는 가볍게 그것을 들어 열어보았다. 베르무트에게 어울리는 새빨간 매니큐어였다. 붉은색은 그녀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색이다. 새빨간 립스틱이던, 새빨간 드레스던, 새빨간 구두에 새빨간 코트, 하다못해 붉은색을 띄고 있는 피까지 그녀에게는 붉음이 잘 어울렸다.

 정작 그녀의 볼이 붉게 물드는 것만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지만. 버번은 느른하게 앉아있는 베르무트에게 다가가 아름다운 손끝을 들어 올려 붉은색으로 물들여 나갔다. 총을 잡았다는 흔적은 일절 없이 누가 봐도 천상 여배우의 손이라고 극찬할 만큼 부드럽고 하얗고 아름다운 손은 이미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마녀의 손이었다.

 베르무트는 경건하게 제 손을 잡아든 버번을 내려다보며 남은 손으로 탁자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말 할 것도 없이 매니큐어를 잠시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낸 버번은 담배의 꼬리마저 새빨갛게 만들었다.

 얄쌍한 담배를 입에 문 그녀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꼬고 있던 다리가 한 번 뒤틀리며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가운을 제치고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버번은 1mg의 관심도 주지 않고 손가락 끝에 집중할 뿐이었다. 재미없게. 예상은 했지만 언제나 그의 반응은 다른 남자들과 상이해서 웃음이 나왔다.

 

 “정말, 어디서 이런 게 튀어 나온 걸까.”

 “…….”

 “정보 수집 능력도 좋고, 상황 판단력도 좋고, 내가 꽤 까다로운 사람인데 비위까지 잘 맞추고.”

 

 누구든 탐을 낼 것 같은 인재인데, 어째서 이 조직일까. 베르무트는 혼잣말하듯 내뱉고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한쪽 손끝이 전부 새빨갛게 물들었다. 장미를 짓이겨 나온 물을 그대로 물들인 것 같았다. 비싼 값 하네. 건조하게 감상을 내뱉자 버번이 다행이라며 웃었다. 유순해 보이는 눈꼬리가 더 밑으로 내려갔다. 분명 현재상황의 갑은 베르무트인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 웃음이 기분 나빠서 그녀는 눈을 돌렸다.

 장미와 라벤더, 거기에 담배 냄새까지 더해지자 정말로 묘한 냄새가 룸 안을 떠돌아 다녔다. 나갈 때 창문 열고 나가라고 해야겠네. 자신의 손끝에 집중하는 버번을 내려다본 그녀는 담배를 한 숨 크게 빨아들이더니 그대로 버번의 머리에 후 뿜어냈다. 확실히 기분이 상한 듯 했지만 깔끔하게 매니큐어를 바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버번.”

 “?”

 “아카이 슈이치가 죽었다는 것, 들었지?”

 

 멈칫, 베르무트는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악했다. 버번은 여상스레 손끝만 바라보고 목소리를 흘렸다.

 

 “아아, .”

 “많이 아쉽겠어?”

 

 그렇게 직접 죽인다면서 난동을 피우고 다닌 주제에 네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죽게 되었으니. 베르무트는 비소를 숨기지 않았다. 영락없이 버번을 떠보는 눈치였다. 그와 팀업을 맺었던 둘이 전부 노크였으니 당연할 처사였다. 그는 조용히 자그마한 새끼손가락에 붉은색을 칠하고 매니큐어를 닫았다.

 

 “그래서, 조금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요.”

 

 버번이 머금은 웃음은 비소 대신 그 누가 봐도 모든 것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매력적인 미소였다. 어머나. 베르무트의 눈이 얇게 휘어졌다.

 

 “좋아, 계획이나 들어보지.”

 

 버번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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