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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버번]13일의 금요일 본문

AKAM/단편

[라이버번]13일의 금요일

브루나 2017. 10. 13. 15:58

본문에 조금 더러운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하긴 하지만 주의해 주세요.






 버번은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둑한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문득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괴담이 어디서 나왔더라, 생각하다가 미국의 영화 타이틀 이었다고 생각해냈다. 그것에 이어 떠오른 것은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요, 뒤이은 것은 잔인한 살인자였다. 버석이는 입술에 침을 바른 버번이 이번 13일의 금요일에는 그 살인마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며 조소를 흘리자 귀에 꽂아둔 이어폰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슨일이지?

 “별거 아닙니다. 타겟은 어떻게 됬습니까?”

 ―네 앞쪽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직접 처리해야할 것 같군.

 “오 분 후 진입합니다.”

 ―라.

 

 이어폰 틈새로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흘러나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버번은 잠시 이어폰을 뺐다. 타겟이 들어간 건물은 이미 버려져 철거만을 앞두고 있는 곳이라 폐허에 가까웠다. 자신의 발소리를 들으며 오들오들 떨 타겟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휴대폰을 켜 시계만 쳐다봤다. 오 분 후, 시계의 숫자가 반짝 움직이자마자 빼두었던 이어폰을 오른쪽 귀에 끼우고 건물 안으로 발을 옮긴 버번은 뚜벅뚜벅 콘크리트 건물 내부에 소리가 울리자 정말로 호러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겪고 있는 사람은 더 그렇겠지. 제 발소리가 아닌 다른 소음을 찾아 타겟의 위치를 알아낸 그는 똑같은 빠르기의 걸음걸이로 다가가 쏙 고개를 들이밀었다. 버려진 책상 밑, 살이 뒤룩뒤룩 찐 남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은 어찌봐도 보기가 싫어서 타겟이 몸을 움직여 덜컹이는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고 방긋 웃는 척 눈을 살짝 감았다.

 

 “안녕하세요.”

 

 힉,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질척하니 달라붙는다. 아까 들었던 목소리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에 괜한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속으로 고개를 젓고 남자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남자는 버번이 시야에 전부 들어오자 꼴사납게도 실례를 했는지 지린내가 슬슬 올라왔다. 버번의 얼굴에 방긋 피어났던 웃음이 구겨져 묘한 표정이 되었다. 저항할 수단도, 의지도 사라진 남자는 눈물 콧물에 침까지 질질 흘리며 울고 있었다. 결국 버번의 얼굴에서는 묘하게 웃고 있던 표정도 사라져 가면을 덧씌운 것 같은 무표정이 되었다.

 

 “, 파일 여기 있어. 줄 테니까 제발 사, 살려,”

 “미안한데,”

 

 버번은 우느라 뚝뚝 끊기는 남자의 말허리를 끊고 그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내용을 본 이상은 살려 둘 수가 없거든요.”

 

 묵직한 반동과 조금은 줄여진 소음을 들으며 그는 절망에 풍덩 빠진 남자의 눈을 마주봤다. 눈물을 그득 품은 그것에는 원한과 공포, 억울함과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반짝이고 있었지만 이내 빛을 잃고 무기질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버번은 눈이었던 무언가를 조금 더 바라보다가 남자의 상의를 뒤적여 작은 메모리 카드를 찾아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놓고 그대로 뒤를 돌아 건물에서 나섰다.

 

 “데이터 회수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주변 CCTV10분 정도 더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안에 이쪽으로 올 수 있나?

 “절 얕보는 겁니까?”

 ―설마.

 

 가라앉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날카롭게 대응하자 김이 빠질 만큼 가벼운 느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버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금 먼 곳에 세워둔 차로 가서 그대로 라이가 있는 곳까지 질주했다. 늦은 새벽의 도로는 한산하다. 약속한 10분 중 8분여를 소모해 도착하자 라이플은 기타 케이스에 잘 모셔둔 채 담배만 태우고 있는 장발의 남자가 있었다. 버번은 라이에게 다가가 왼손에 들이마셨다.

 

 그 행동에 당황한 듯, 당황하지 않은 듯 가만히 있던 라이는 다시 제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돌아오자 조용히 필터 부분을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마신 담배연기는 여전히 지독해서 버번의 눈살이 구겨졌다.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뺏어간 건지. 라이가 의문어린 눈을 버번에게 향했다.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더라구요.”

 “.”

 

 라이는 잠깐 날짜를 떠올리고 그의 말에 연결시키며 이제야 알아차린 것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전기톱만 들고 있었으면 딱 제이슨인데. 안 그래요?”

 

 키득이는 목소리가 한없이 낮아져 있는 것 같아서 라이는 말을 아꼈다. 이렇게 선량해 보이는 제이슨이 어디있냐는 말도, 혹은 동정도, 그것도 아니라면 위로도. 전하지 못하는 말 대신 담배 연기만 뱉어내며 가만히 버번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 그 마스크도 필요하려나. 어쨌든. 스카치가 파스타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재료 사왔을 거 에요. 라이는 무슨 파스타 좋아해요?”

 “파스타 중에는 오일이 제일 낫지.”

 “아쉽지만 오일은 없네요~ 토마토로 참아요.”

 “왜 물어본 건가?”

 “놀리려고.”

 

 버번은 해맑게 웃고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뒤돌아 건물을 나갔다. 담배 냄새 좀 빼고 와요! 따라 나가려던 라이는 그 외침에 기타 케이스를 다시 내려놓고 난간에 기대 건물 아래를 바라봤다. 어느새 내려간 것인지 차에 타는 버번의 모습이 보였다.

 

 “이탈리아에서는 13을 행운의 숫자라 여긴다고 하지.”

 

 저주와 행운이 뒤섞인 날의 하늘은 더러운 공기와 밝은 거리에 가려져 별빛을 내어주지 않았다. 반 쯤 탄 담배를 입에 물고 중얼거린 라이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깔끔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운 후 기타 케이스를 매며 토마토 파스타는 또 어떨지 기대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토마토 파스타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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