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슈레이]불면증 본문
오늘도 너의 기억에 감싸인다. 너는 나에게서 떠나버렸지만 너의 기억만은 나에게 남아있기에.
Written by. 브루나
“슈, 요즘 밥은 먹고 다녀?”
“아아.”
조디는 여상하게 말을 꺼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가 걱정되는 마음을 감추고. 아카이 슈이치의 현 건강상태를 살펴보자면 꽤나 안 좋은 축에 속한다. 조디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언뜻 봤을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결론이었다. 언제나 있던 다크서클이 더 짙은 색을 띄어 밑으로 더 내려와 있었고, 원래부터 푹 꺼져있던 볼이 더 들어가 광대가 많이 부각 되고 있었다.
조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에게 이 이상으로는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잃은 것이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기에.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 그에게 무언가의 조언을 하거나 쉬라고 말하는 것이 더 고통 받으라 말하는 것임을 알기에. 조디는 그저 아카이를 옆에서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girlfriend. 이 이름표는 어떨 때에는 아주 큰 힘을 발휘하곤 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고 그것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디는 아카이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서는 안되는 말들이었다.
아카이 슈이치는 그의 연인에게 감정을 오롯이 쏟아 붓는 남자였다. 조디에게도 그랬었고, 조직에 잠입을 위해 이용했던 것 뿐이었을 미야노 아케미에게도 그랬었고, 모든 증오와 마이너스의 감정들을 뛰어넘어 맺어진 후루야 레이에게도 그랬다. 오히려 그 과정들을 뛰어 넘어 손을 맞잡았기에 더욱 깊은 감정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오롯이 존재했다.
조디는 이빨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빨대 끝을 약간 씹으며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골랐다. 당이라도 충전하라고 불렀지만 앞에 앉은 남자는 당은 무슨 에스프레소를 시켜서 홀짝거리는 중이었다. 좀 먹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할까, 왜 안 먹고 다니냐고 물어볼까. 조디는 최선의 답을 찾았다. 그것은 말없이 아카이의 곁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이런 것으로 그의 여자친구가 된다는 생각은 1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그는 조금 위태로워 보일 뿐이었다.
조디는 반쯤 마신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았다. 차가운 내용물과 조금 더운 겉의 온도차로 생긴 이슬들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물기를 옷에 닦은 조디는 바닥을 보인 아카이의 에스프레소를 슬쩍 바라보고는 더 잡아놓는 것도 의미는 없을 것 같아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려놓았던 아메리카노를 다시 들고 일어났다. 가자, 슈. 데려다 줄게.
아카이는 조디가 걱정하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무언가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않고 있었고, 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고, 후루야 레이의 부재로 슬퍼하고 있는 것도 맞았다. 그것들을 전부 알고 있었지만 조디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아카이는 현재의 상황을 별로 꺼리지 않는다는 것.
아카이가 식사를 챙기려 할 때 후루야와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수면을 취하려 할 때 후루야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후루야는 그의 곁을 떠나갔지만 그 기억만은 뇌와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려 아카이를 조금씩 침식해 나갔다. 아카이, 아카이.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기억한다. 그 얼굴이 나를 향하고,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기억한다.
아카이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디의 차를 타고 가며 아카이는 그것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후루야로 점철된 느낌이었다. 언제나 저의 운전은 너무 거칠다고 하면서 운전대는 자신이 잡곤 했었지. 범인을 쫓을 때에는 둘 다 비슷한 운전을 하고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후루야는 조심스러운 운전을 했었다.
이렇게 저의 생각 모두를 자신에게로 돌리는 후루야에게 아카이는 비식 웃어보였다. 조디는 웃음을 얼굴에 띠운 아카이를 보며 그나마 좀 괜찮은 것 같아 마음을 약간은 놓을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안심했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의 빈자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아카이의 곁은 쓸쓸히 비어있을 것임을 조디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 웃음이 고통을 조금이나마 녹여주길 바랄 뿐이었다.
“고마워.”
“뭘. 푹 쉬고 내일봐.”
아카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집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조디의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 익숙했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톡 쏘는 듯 하지만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아카이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자극하는 집을 부러 팔지 않았다. 떠나지 않았다. 그 기억이 계속 자신의 곁에 머무르길 바라고 있었다.
아카이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옷들도 모두 다 검은 것이었지만 옷장 구석에는 옅은 색의 옷도 간간히 보였다. 흰색이나 분홍색 같이 그에게 어울렸던 색들. 그 옷들을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이 아카이는 그의 흔적을 자신의 집에 그대로 남겨놓았다. 마치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옷을 갈아입은 후 가볍게 씻고 침대에 눕자 선명했던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대로 잠들면 너의 기억이 다시 뇌를 파고들어 나에게 상처를 입힐 것을 알아서일까. 그럼에도 억지로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감기고 그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완전한 암흑이다. 이대로 누군가가 이곳에 침입해 와 나의 숨을 끊는다면 너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정신은 말똥말똥 살아있다. 눈만 감은 그 상태에서 조금씩 호흡이 느려진다. 이윽고 호흡이 멈춘다. 두근, 두근…. 심박수가 느려진다. 스스로 의식을 움직여 호흡을 막아낸다. 몇 십 초간 그것을 유지하자 심장이 압박되는 느낌과 함께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 목소리가 귀로 들어오면 너는 내 의식을 밖으로 끌어낸다.
허억,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킨다. 몇 분일까, 몇 시간일까. 시계를 보면 몇 십 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일 테지만 심연의 속에서는 몇 시간이 지나간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또다시 너에게로 가려는 나를 막아냈다. 아카이는 입술을 짓씹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잠을 잘 수 없는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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