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오키아무]Merry merry Halloween 본문
1)
오키야 스바루, 즉 아카이 슈이치는 오늘도 어김없이 포아로에 발 도장을 찍으러 왔다가 잠시 그 발을 멈칫했다. 누가 봤다고 하더라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멈칫함이었지만 그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확연한 진실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물론 그 충격이 꼭 나쁜 이유라는 것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키야는 지금 오늘도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미소까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무로는 무언가의 한기를 느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의 포아로는 할로윈이라는 분위기를 양껏 낸 듯 익숙하게 맡아보지 못했던 호박냄새가 내부를 감싸고 있었고 검은 색종이로 박쥐모양을 내 가게의 곳곳에 붙여놓았다. 마스미네가 지난번에 만들고 있던 게 이런 거였나. 흐음, 눈을 슬며시 반쯤 떴다 다시 감은 오키야는 발을 놀려 어중간한 구석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오키야를 발견한 아즈사는 아무로에게 주문을 부탁했다. 아무로는 웃으며 대답하고 뒤를 돌아 얼굴을 조금 굳혔다.
“그 차림은 뭔가요?”
“할로윈이니까 한 겁니다. 메뉴 보고 부르세요.”
메뉴를 내려놓은 아무로는 다시 뒤를 돌아 다른 손님들한테로 갔다. 아무로의 머리색을 닮은 옅은 밀빛 꼬리가 엉덩이께에서 튀어나와 살랑이고 있었다. 똑같이 복슬복슬한 귀도 머리 위에 한 쌍이 쫑긋하니 나와 있었다. 저런 색도 있었나. 오키야는 즐거운 듯 웃고서 메뉴판을 보았다. 역시나 할로윈과 관련된 메뉴들이 생겨있었다. 펌킨 스프, 펌킨 파이, 박쥐 쿠키와 같은 것들.
오키야는 그것들을 잠시 눈으로 훑은 후 언제나 시켰던 아메리카노를 시킬 뿐이었다. 아쉽게도 아무로가 다른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주문을 받은 것은 아즈사였지만 포아로의 내부는 크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눈으로 계속 아무로를 쫓을 수 있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아무로는 어쩌다 한 번 오키야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능글맞게 웃으며 대처할 뿐이었다.
아오, 진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아무로는 올라가려는 눈초리를 억지로 내리고 아즈사가 부탁한 아메리카노를 오키야의 앞으로 가져다 줄 뿐이었다.
2)
뒤돌아가는 아무로의 손을 잡은 오키야는 슬쩍 웃으며 아무로의 소매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무로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턱을 괸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안경을 제대로 올린 후 오른 눈을 반쯤 뜨고 보내는 눈빛이 지나치게 색정적이라 아무로의 얼굴이 더 달아올라 터질 것 같은 빨간색을 띄고 있었다.
미쳤어요? 조직이 보고 있으면 어쩌려고! 아무로는 그런 눈으로 오키야를 노려보고 후닥닥 멀어졌다. 오키야의 올리브색 눈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 오늘따라 아메리카노의 향이 좋았다.
3)
“…설마 너를 볼 줄은 몰랐는데.”
‘할로윈이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특유의 웃음을 지은 스카치는 발소리 없이 걸어와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친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낮에 들었던 아무로의 말과 비슷한 말을 내뱉고 조금 뻘쭘한 듯 웃은 그는 잠시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만지작거렸다.
‘제로, 그러니까 …버번하고는 잘 지내?’
“아아, 어느 정도는. 그때보단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
‘그나마 다행이네.’
스카치는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턱수염이 약간 이리저리 나있는 그의 모습은 마지막 모습과 소름끼칠 만큼 변한 것이 없어서 죽었다는 사실이 피부로 닿아왔다.
4)
“왜 레이군이 아닌 나한테 찾아 온 건가?”
‘뭐, 제로한테 찾아가면 놀랄 게 분명하잖아. 오히려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한테 그 기억은 꽤 괜찮게 남았다는 투인데.”
‘하하, 사실 너라면 날 보고서 난리치지는 않을 것 같았거든.’
스카치는 웃으며 변명하듯 말할 뿐이었다. 죽은 이후에도 뭔가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온 것을 보면 미련이 많은 걸까. 손에 들린 잔에서 얼음이 녹아 잘그락 소리를 만들었다. 조용한 서재 안에는 버번을 홀짝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스카치는 그 후 몇 분정도 말을 아꼈다.
5)
‘제로를 잘 부탁해. 언제나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괴롭힐 생각 말고.’
“걱정 마라. 그를 괴롭히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지.”
스카치는 대답을 듣고선 빙그레 웃었다. 조직에 함께 있을 때부터 이어진 악연이었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은 것 같아 미련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벌써 5년 전의 일이었지만 이렇게 현세를 떠돌 정도로 미련이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살아있을 때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저 나라를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고 조용하게 이 세상을 뜬다면 좋은 일이었건만. 입이 조금 썼다.
6)
“뭐야, 또 혼자 마십니까?”
오키야는 벌컥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온 아무로에 대한 반응이 늦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스카치가 아직 있는데. 놀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오키야로서 있을 때 감춰져 있던 올리브색 눈이 드러났다. 아무로는 놀란 오키야를 보며 피식 웃었다가 경계가 늦춰졌다며 놀렸다.
저 반응을 보니 스카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녹빛 눈이 눈꺼풀 뒤로 숨어들어갔다. 아무로는 능글맞은 미소로 변한 표정을 보고 혀를 찬 후 노트북의 옆에 있는 익숙한 위스키에 눈을 빛냈다. 오키야를 놀라게 할 만 한 건수를 잡은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로윈이라는 특별한 행사의 분위기에 취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로는 뚜벅뚜벅 오키야에게로 다가와 그 손에 들린 버번을 빼앗아 들고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입안이 순식간에 화끈하게 물드는 기분에 슬쩍 웃으며 오키야의 무릎위에 걸터앉자 허벅지 근육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오키야는 보이지 않게 스카치를 곁눈질하다가 자신에게 먼저 입을 맞춰오는 아무로의 행동에 답지 않게 몸을 굳혔다.
어라, 뭔 일이래. 아무로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느끼며 오키야의 어깨에 팔을 얹고 고개를 살짝 틀어 입술이 깊숙하게 맞춰지도록 했다. 위스키로 촉촉해진 혀가 빠끔 나와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오키야는 이성이 끊어지는 것을 느끼고 스카치가 보든 말든 아무로의 뒤통수를 슬쩍 잡아 눌렀다. 입술이 더 깊게 맞춰졌다.
주르륵, 조금 뜨겁게 느껴지는 알코올이 아무로의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것보다도 더 뜨거운 혀가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아무로는 오키야의 목에 팔을 감고 응수했다. 스카치가 옆에서 허허롭게 웃는 것이 들려왔다. 이정도로 친해졌으면 된 거겠지. 스카치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열정적인 키스 도중 오키야는 오른 눈만 슬쩍 떠서 스카치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다행이군. 아무로는 자신의 몸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직후 등에 닿는 약간 차가운 느낌에 입술을 떼고 왼쪽 입꼬리를 씩 올려 웃으며 말했다.
“좀 성급하신 거 아닌가요? 오키야 스바루씨.”
“글쎄요. 아무로씨야말로 오늘 꽤 다급하신 것 같은데.”
오키야는 흘러내린 버번이 만든 길을 따라 입술을 내려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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