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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이]당신이 죽고 3년. 본문

AKAM/단편

[슈레이]당신이 죽고 3년.

브루나 2016. 11. 8. 23:59

당신이 죽고 3년. 현재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당신의 죽음을 나는 믿지 못했었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당신을 대신해 지킬 수는 있었다. 이제는 인정할 때도 된 것 같기도 했다. 매일 매일 ‘다녀오겠습니다’의 인사를 지우고, ‘다녀왔습니다’의 인사를 지워나갔다. 어쩌다 한 번씩 환청이 들려오는 날에는 눈물을 머금고 침대로 갈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환청은 사라졌고 싸늘한 집 안도 아프지 않았다.

장을 볼 때 카트를 끌어주는 당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언제나 부드럽게 웃어주었던 당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갔다. 당신의 포드 머스탱은 당신이 써 놓았던 유서에 의해 나의 소유로 되어있었지만 그 차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제는 폐기해도 되지 않을까.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당신의 말을 꺼내지 않았고, 나는 당신을 떠올리지 않았다. 당신이 주위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추울 때가 있었지만 나는 당신을 지워나갔다. 당신은 그곳에서 잘 있을지 궁금하다. 아프진 않을까, 춥진 않을까, 외롭진 않을까. …‘그녀’를 만났을까.

그녀를 만났다면 다행이다. 나 같은 것보다도 그녀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당신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질투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다. 그래도 당신을 사랑했고 연인의 관계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니까.

당신은 언제나 나를 배려했었다. 나는 당신에게 날을 세우고 싫어했던 날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때에도 당신은 나를 배려했었다. 그 때 당신이 나를 사랑했었을 것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당신의 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나에게는 당신을 미워한다는 선택지 밖에 없었기에. 당신을 자세히 살펴볼 만한 권리는 나에게 없었기에.

우리의 첫 만남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적의를 가지게 된 그날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스카치가 사라지고 나는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증오라는 감정과 당신이라는 목표를 만들어냈다. 세계가 무너지려는 나에게 당신에 대한 증오는 나의 세계를 다시 구축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나에게 이 세계와 같았다. 이미 한 번 무너진 세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당신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다시 올려 세울 수 있었다. 또한 당신에게 그 진실을 들었을 때 다시 무너지려는 세계를 당신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 세우게 했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이었고, 당신은 나의 세계였다. 나의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당신만이 오롯하게 존재했다. 나의 세계는 당신에 의해 무너졌고, 당신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재구성된 세계는 당신만이 존재했다. 나와 당신만이 존재했다.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사라졌다. 내 곁에는 당신밖에 남지 않았었고, 당신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몰릴 때, 신체적으로 힘들 때, 곁에 있었던 것은 당신이었다. 당신에게 향하는 감정이 어떻든 당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당신의 탓으로 돌리며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없어졌다고 인정하고는 싶지 않았지만 당신이 좋아했던 이 살갗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는 있었다. 당신이 곁에 없다는 그 서늘함과 외로움은 어쩌다 한 번씩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 느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당신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다, 임무를 하다 맞은 총탄에 흘린 피를 바라보다 자연스레 연상되어 떠오르는 당신을 기꺼이 떠올리며 슬퍼하는 것 보다야 임무에 파고들어 당신을 잊는 것이 더 좋았다. 그것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당신이 곁에 없음에도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세계는 이미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는 당신이 없어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질질 끌며 살아있지 않은 채 살아왔을 뿐. 이제는 그것을 인정하려고 한다. 나의 세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을.




안녕, 나의 세계여. 지금 만나러 갑니다.







―라이하 고개에서 승용차 폭발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체에서 나온 지문 대조를 통해 사망자는 후루야 레이(34세)로 밝혀졌으며 폭발한 승용차는 붉은색의 포드 머스탱으로, 차내의 발화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유는 불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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