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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내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조금 더러운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하긴 하지만 주의해 주세요. 버번은 건물과 건물 사이, 어둑한 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문득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괴담이 어디서 나왔더라, 생각하다가 미국의 영화 타이틀 이었다고 생각해냈다. 그것에 이어 떠오른 것은 전기톱이 돌아가는 소리요, 뒤이은 것은 잔인한 살인자였다. 버석이는 입술에 침을 바른 버번이 이번 13일의 금요일에는 그 살인마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며 조소를 흘리자 귀에 꽂아둔 이어폰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무슨일이지? “별거 아닙니다. 타겟은 어떻게 됬습니까?” ―네 앞쪽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 직접 처리해야할 것 같군. “오 분 후 진입합니다.” ―라져. 이어폰 틈새로 그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흘러나..
베르무트는 샤워를 하고 나오니 문득 손톱이 꽤 자랐다는 것을 자각했다. 언제나 심하게 길지 않을 정도로만 다듬는 손톱이 배죽 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중이었다. 휴대폰을 들어 네일샵을 예약하려던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어플에 들어가는 대신 주소록으로 들어갔다. 받는 사람, 음… 뭐라고 정의해야 좋을까. 머리 좋고 일 잘하는 핸드백? 핸드백 주제에 자신의 약점을 잡아놓긴 했지만 그녀가 구태여 옆에 데리고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조직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네일케어 해줘] 메일을 보내고 일 분이 채 되지 않아 답장은 돌아왔다. [그런 걸로 부르지 말아달라구요! (*`皿´*) 지금 가겠습니다] 베르무트는 피식 웃었다. 여자애 같기는. 그와는 대부분 조직의 일로 연락을 했지만 사..
희여멀건한 담배연기가 공중으로 퍼진다. 겉으로는 꾸역꾸역 멀쩡한 척 하고 있지만 속은 뇌를 꼬아놓은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그것을 드러낼 수 없기에 라이는 오늘도 담배를 손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그렇게도 기피하며 거리를 둬왔던 마약성 진통제의 일종이었다. 조직에서 유통하는 부류 중 하나인지라 손에 넣는 것은 쉬웠다. 코드네임까지 얻은 그는 말단들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돈만 제대로 쥐여 준다면 온갖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본래 그의 직업상 조직의 것에는 손을 대지 않았었지만 인간이기에, 센티넬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고통은 도저히 평범한 진통제로는 넘어갈 수가 없었다. 유럽 어드메의 나라에서 새로 개발되었다는 이 진통제는 시야가 흔들릴 정도로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임무가 있는 날에는 통상으로 유통되는..
당신이 없는 이곳은 새까만 어둠의 속과 같았다. Prayer Akai Shuichi X Furuya Rei “아무로씨, 오늘은 이만 들어가셔도 될 것 같아요.” “아, 그럼 이것만 정리하고 갈게요.” 아무로는 웃으며 아즈사에게 대꾸했다. 다 씻은 그릇을 냅킨으로 닦고 차곡차곡 쌓아 정리해 선반에 넣는다. 쉽고 간단한 작업이었지만 아무로는 그것이 아주 중요하고 힘든 작업이라도 되는 듯 하나하나 집중해서 닦아 넣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선반을 보며 잠시 뿌듯한 표정을 짓고 손을 모아 맞대어 문지르자 그의 표정이 흐려졌다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앞치마를 벗어 정리해놓고 아즈사에게 인사하자 밝은 인사가 되돌아왔다. 포아로에서 통하는 뒷문으로 나가 자신의 하얀 애마에 탑승한 아무로는 익숙하게 차를 몰아 베이커 가를..
상윤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정신력으로 살아남아 제 사랑스런 애인이 있는 집에 도착했다. 어떻게 현관을 지나치고, 신발을 벗어 놓고, 방문을 열었는지는 모르겠다. 제 애인이 자고 있어 사람의 온기가 들어있는 침실에는 단촐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저와 제 애인 외에 들어올 일 없는 침실이다. 수면을 도와줄 수 있는 침대와 사랑스러운 애인만 존재하면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흐릿한 눈으로도 깊은 잠에 취해있는 애인은 사랑스럽다. 저도 그 옆에 누워서 빨리 꿈나라로 향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존재하는 절차들을 거칠 자신이 없어 문제일 뿐. 라이플백이 제 등에 없는 것을 보니 무의식중 집 안 어딘가에 잘 기대놓고 온 것 같다. 그 이상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깊고, 깊은 심해 속의 고요한 바닷물은 검은 빛만을 띤다. 탁했지만 언제나 빛나던 당신의 녹빛은 어찌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나. 탁한 검은 빛이 당신의 맑음을 가려 내 앞에서 당신이 사라진다. 후루야는 그것이 싫고, 또 싫었다. 제 앞에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 존재의 불완전함이 싫어서 제 손으로 그것을 돌려놓고자 했다. 퍽, 그들이 익숙하게 듣는 타격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자신마저 심해에 들어온 것 마냥 답답한 실내였지만 그 음성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 쉴 틈이 생겼다고 느꼈다. 심해의 압박 사이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한 번 깊은 바다를 마주했다. 딱딱한 광대뼈가 닿아온 손등의 뼈 대신 손끝이 찌르르 울려왔다. 네 존재만으로도 이리 떨리지만 그 깊은 곳에서 나를 바라보지 않는 당신은 싫다..
“아무로씨, 오키야씨랑 사귀기 시작하신 것 맞죠?” 아무로는 약간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작게 물어오는 아즈사의 행동에 잠시 동안 눈을 깜박거렸다. 그 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즈사는 축하드린다며 두어 번 박수를 치고 맑은 웃음을 얼굴에 띠었다. 카페에서 고백도 많이 받았었지만 전부 다 거절하더니 그 이유가 따로 있었었구나, 아즈사는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의 조합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로맨틱해서 그녀의 얼굴이 말갛게 붉어졌다. 아즈사의 물음에 깔끔하게 대답한 아무로는 만족스런 표정의 그녀가 떠나가자 닦고 있던 접시를 다시 들어 깨끗하게 닦기 시작했다. 물기로 젖어있던 접시의 물방울이 아무로가 들고 있는 타올로 옮겨왔다. 다섯 개의 접시에서 물방울을 빼앗아 올 때 쯤 고개를 ..
남들에게 관심 받고 싶으면서도 관심 받는 게 무서워. 모순이지 정말. 후루야는 조소했다. 제 신분으로는 남들에게 관심을 받기는 무슨 그 관심을 떨쳐내야만 했다. 그 사실은 저를 갉아먹고 있었고, 확실히 그는 자신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이곳에 살아있는 것이 맞을까. 아무도 모르는 나인데. 과연 자신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발밑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지워지고 그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볼 옆에서 살랑이는 금색 머리카락의 감각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줄 뿐이었다. 공안의 동료들도 서로를 인식하지 않으며 지나치는데 타인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가진 이름도 많았다. 아무로 토오루, 버본, ..
후루야는 언제까지나 그를 잊지 않고 살 마음이 없었다. 평범하게 그를 잊고, 평범하게 좋은 여자를 만나고, 평범하게 아이를 낳아 은퇴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도 눈을 감으면 저 암흑 너머의 눈꺼풀에 떠오르는 그의 모습이 평범함을 잡을 수 없게 만들었지만 후루야는 오로지 그것만을 원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지. 오늘도 꿈에 나온 그의 마지막 모습에 후루야는 그러쥔 손을 눈 위에 올려두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메마른 한숨만이 입에서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 남자는 오늘도 과거와 한 치도 달라짐 없는 모습이었다. 짙은 다크서클과 빼쭉하니 올라간 눈매, 홀쭉하게 들어간 볼 때문에 강조되는 광대뼈, 후루야가 그의 신체부위 중 가장 좋아했던 녹빛이 짙은 눈까지. 그는 이..
라이는 손에 들린 위스키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상의 불빛으로 인해 칠흑 같지만 밝은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들이 창조해낸 인공적인 불빛으로도 덮을 수 없는 환한 만월의 달빛만이 하늘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달빛에 취해 잠시 신경을 느슨히 했다가 등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느낌에 정신을 차리자 흰 목에 가느다란 팔이 감겨왔다. “버번.” “뭐해요?” “그냥 잠시.” 버번은 라이의 목에 매달려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 채 손만 뻗어 라이의 위스키 잔을 빼앗아 한 입 마시곤 혀를 빼어 물었다. 향긋한 냄새와는 달리 씁쓸한 맛이 입가에 계속 남아 정작 그 이름을 가진 버번은 좋아하지 않는 위스키였다. 그녀는 위스키 잔을 다시 라이의 손에 쥐여주고 투덜거렸다. “또 버번이에요? 참 질리지..